오늘의 만나
황금률 -나서영 목사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025-06-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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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를 황금률이라 부르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최고의 도덕률을 일컫는다. 

이 황금률은 표현은 약간씩 다르나 다른 종교에도 있다. 힌두교에서는 “내게 행해진다면 고통스러운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불교에서는 “어떤 일을 행하려 할 때 먼저 생각하라. 이 행위가 나 자신 또는 남 또는 나와 남에게 해롭게 될 것인가 해롭다면 절대로 행치 말라.” 유교에서는 “네 자신에게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행치 말라.” 유대교에서는 유명한 랍비 힐렐에게 한 이방인이 불쑥 찾아와 “제가 외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동안 유대교의 전체를 가르쳐 주십시요.” 힐렐은 “내게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대답하였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은 다른 종교는 다 “말라”로 소극적인데 비해 기독교는 “하라”로 적극적이다. “네가 말할 때 다른 사람이 나서서 중간에서 네 말을 끊으면 싫지? 너도 다른 사람 말할 때 중간에서 나서지 말아라.” 소극적이다. “네 말을 다른 사람이 끝까지 잘 들어주면 좋겠지? 너도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라.” 적극적이다. 소극적일 때는 다른 사람 말하는 것 듣기 싫어 속으로 딴 생각하면서도 나서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적극적일 때는 다른 사람 말할 때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경청해야 한다.

“휴지가 널려져 있는 거리가 싫거든 휴지를 버리지 말라.” 소극적이다. “휴지가 널려져 있는 거리를 누가 쓸기를 바란다면 네가 쓸어라.” 적극적이다. 소극적일 때는 다른 사람이 휴지를 버려도 내가 휴지를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적극적일 때는 다른 사람이 버린 휴지까지 내가 주워야 한다. 주의 말씀 순종하는 참된 기독교인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일 수밖에 없다. 어두운 세상에 가만 앉아 있을 수 없다. 세상을 밝게 만들어 간다.

“말라”보다 “하라”가 좋으나 이기적 욕심에서 해서는 안 된다. “뇌물을 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뇌물을 써라”는 안 된다. 어느 농부가 무우 농사를 지었는데 보기 드물게 큰 무우가 하나 나왔다. 자기가 먹기는 아까와 선정을 베풀고 있는 원님에게 갖다 드렸다. 원님은 그 농부의 마음씨를 갸륵히 여겨 아전에게 물었다. “창고에 뭐가 없느냐?” “예, 저번에 돼지 한 마리 들어온 것 있습니다.” “그것을 이 농부에게 주어라.” 무우 하나 바치고 돼지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돼지를 바치면 소를 받겠구나 생각한 한 다른 농부가 돼지를 원님에게 바쳤다. 원님이 이번에도 “창고에 뭐가 없느냐?” “예, 저번에 들어온 무우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 그것을 이 농부에게 주어라.” 그 농부는 울상이 되었다.

황금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내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공기로 숨쉬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공기로 숨 쉬도록 내가 물과 공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황금률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땅에 천국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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