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피를 우리 자손에게.." - 나서영 목사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025-01-12 10:06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유대인들이 소리쳐 외쳤다. 빌라도는 민란이 날까 두려워 허락하면서도 손을 씻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는 빌라도의 말에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였다. 유대인들의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 승천해 가신 후 몇 십년 안되어 유대 열심당원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로마는 예루살렘을 페허로 만들었다. 예루살렘성전은 다시 파괴되었다. 이것이 제2차 성전 파괴였다. 이성전의 한 벽만 남아 지금도 그 앞에서 유대인들은 통곡하고 있다. 제 1차 성전 파괴는 남북으로 갈려져 있던 유대 왕국들의 멸망 때 있었다. 제 1차, 제 2차 성전 파괴와 더불어 유대인들은 죽임을 당했고 사로잡혀갔고 또 고향을 떠나 흩어졌다. 본토를 잃은 유대인들은 여기 저기 정처를 찾아 헤매였다. 이슬람 지배하의 유대인들보다 기독교 지배하의 유대인들이 더 심한 핍박을 받았다.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이슬람 지배 때는 그들의 집 지붕이 모슬림의 집 지붕보다 높아서는 안된다는 제약이 있긴 있었으나 자유롭게 문화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스페인을 탈환하였을 때는 유대인들은 추방당하였고 기독교에로 개종을 강요 당하였다. 거부하면 화형하였다. 한 해 동안 화형당한 유대인들이 2천명이 된 해도 있었다. 기독교 라테란회의에서 유대인들은 특별 표시를 붙이고 다니게 하기로 결정하여 기독교 지역에서는 어느 나라든 유대인들에게 유대인 빼지나 완장을 차게 하였고 또는 모자를 쓰게 했다. 이 유대인 표시는 수치의 표시가 되었다. 십자군전쟁 때는 십자군이 지나가는 지역 유대인들은 학살당하고 약탈당했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흑사병 유행 때는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헛소문으로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학살당하였다. 유대인들은 직업의 제한을 받았고 거주의 제한을 받았다. 그들이 금융업에 종사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들은 모여 게토라는 곳에서 살았다. 게토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밤에는 게토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어길 경우 투옥되었고 사형까지도 당하였다. 나폴레옹이 가는 곳마다 게토를 철폐하고 유대인 해방이 이뤄졌지만 얼마 후 다시 그들에게 히틀러의 마수가 뻗쳤다. 히틀러는 지구상에서 유대인들을 없애버리려 하였다. 유대인들은 온전히 바쳐진 번제라고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대학살을 당하게 되었다. 히틀러 손에 학살당한 유대인들은 600만명에 이른다.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죽을 구덩이를 파게 하여 그곳에 묻어 죽이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을 무리져 욕실에 들어가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목욕을 기대하며 사워꼭지에서 물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사워 꼭지에서 나온 것은 물이 아니라 죽음의 가스였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으로 세계의 동정을 얻어 유대인들은 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나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그 피를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던 그들 조상 유대인들의 외침이 없었어야 하는데. -나서영 목사(용문산기도원 원장)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자유인이 되었는데.. 나서영 목사 25.01.18 다음글사람은 일곱번 된다 - 나서영 목사25.01.08